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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TT

[왓챠 추천 영화] 본 아이덴티티 : 익숙한 새로움이란 이런 것


왓챠에서 20년 전 첩보 액션 영화 [본 아이덴티티]를 감상했습니다.


당시에는 첩보 장르에 대한 새로운 캐릭터 접근과 연출 스타일을 펼쳐보이며 센세이션을 일으켰지만, 지금은 이 자체가 또 하나의 클래식이 되어버린 명작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작품입니다.


이 작품 이전까지는 007 시리즈로 인해 첩보원이라는 캐릭터에 대한 어떤 전형이 관객들 머릿속에 있었습니다. 뭐든 능숙하고 누구보다 여유롭고, 매너와 관능미, 귀족미가 넘치는 매력의 소유자인 제임스 본드에 대한 인상이었죠. 하지만 [본 아이덴티티]가 이런 첩보원에 대한 선입견을 단방에 날려버렸습니다.


그 핵심은 영화의 컨셉인 '기억을 잃은 요원'이라는 심플한 아이디어 덕분입니다. 이 아이디어로 인해 주인공 제이슨 본은 지금껏 한번도 본 적 없는 유형의 첩보원 캐릭터를 선보이게 되죠.


자신이 어떤 신체적 능력을 갖고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싸움이 벌어지면 헤매고 스스로의 능력에 놀라고 또 그 능력과 자신이 저지른 알 수 없는 일들에 두려워하고, 상대 킬러를 죽일 땐 인간적인 양심에 죄책감을 느끼고 자기 정체성에 괴로워하는 등 이전의 제임스 본드와는 근본부터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제임스 본드와 제이슨 본 중 누가 더 좋은 캐릭터다 단적으로 선택할 순 없지만, 분명 캐릭터의 현실성과 내적 갈등의 깊이만 따진다면 제이슨 본이 우세한 게 사실입니다.


액션영화가 다른 액션영화에 비해 차별점을 가질 수 있는 지점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캐릭터'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 아이덴티티]는 자신만의 확실한 차별점을 가졌다고 할 수 있죠.


익숙한 첩보액션 장르의 틀에 단 한 가지 새로운 컨셉을 탑재한 캐릭터를 넣어 섞으니 이토록 센세이셔널한 작품이 탄생했다는 게 너무도 놀랍습니다.


제이슨 본을 연기한 맷 데이먼 역시 캐릭터를 어떻게 분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내성적이며 조심스럽고 혼란스러운 모습부터 액션을 벌일 때는 실로 인간병기 같은 능숙하고 저돌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갈 때는 두려워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등 제이슨 본을 입체적으로 연기해냅니다.


액션은 사실 [본 아이덴티티]에서는 크게 놀랍지 않습니다. 폴 그린그래스가 메가폰을 잡은 2편 [본 슈프리머시]와 3편 [본 얼티메이텀]이 이루어낸 액션의 성취가 워낙 독창적이고 놀라워 [본 아이덴티티]의 액션은 이에 비해 이전에 늘 봐왔던 일반적이고 고전적인 액션에 가깝습니다.


다만 [본 아이덴티티]의 액션이 주는 재미는 바로 캐릭터로부터 오는 혼란스러움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살인 병기로서의 각종 기술들이 튀어나와 싸우는 본인도 놀라는 바로 그 재미인 겁니다.


주인공도 관객도 그가 어느 수준까지 뛰어나게 싸울지, 또 어느 수준까지 순발력과 기지를 발휘할 수 있을지 그 한계를 알 수 없기에 늘 다음 액션에서는 어떤 능력을 어느 정도까지 보여줄까 궁금증을 갖고 지켜보게 됩니다.


첩보 장르를 재정립한 탁월한 첩보액션 3부작의 시작을 알리는 [본 아이덴티티]. 액션 연출은 지금 기준으로 다소 심심할지언정 캐릭터의 매력과 이로부터 파생되는 액션의 아이디어는 지금봐도 재미가 쏠쏠한 탄탄한 완성도의 오락영화입니다. 왓챠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8.6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