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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영화리뷰] 더 스파이 : 실화만큼 묵직한 컴버배치의 열연


베네딕트 컴버배치 주연의 [더 스파이]를 봤습니다. 많은 분들의 호평처럼 유려하고 숭고한 감정이 들게 하는 세련되고 뭉클한 첩보 스릴러 작품이더군요. 실화를 소재로 한 만큼 더 크게 마음을 건드리는 작품이었습니다.


영화 시작, 소련의 장관 올레그는 미국인 관광객에게 미 대사관으로 문서를 하나 전달해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직감한 미국인은 바로 대사관으로 달려가 문서를 운반해줍니다. 그리고 뜨는 영화의 타이틀은 이렇든 평범한 사람이 (영화의 원제대로 단순한 '운반자'가) 세상을 바꿀 스파이가 될 수 있음을 미리 영화적으로 선언하는 것만 같습니다.


시종일관 분위기로 압도하는 연출의 힘이 굉장합니다. 전체적으로는 스릴러보다 드라마에 가까운 톤앤매너지만, 스릴러에 치중한 장면이 나올 땐 아무리 사소한 서스펜스라도 마치 끊어질 듯 절정으로 치닫는 현악기의 줄을 코앞에서 보듯 손 안이 축축해지게 만들죠.

 

 

또한 돌아가는 회전문 뒤에 컴버배치를 위치시켜 그의 모습이 여러 다른 이미지로 보이게 만들거나, 전형적이긴 하지만 컴버배치가 이동할 때 종종 그를 멀리서 감시하는 듯한 시점샷이 개입되는 사소한 연출도 좋았네요.


영화의 스토리텔링은 여느 첩보 스릴러답게 절제되어 있습니다. 다만 이 작품은 '속고 속이는' 것보단 '숨고 숨기는' 쪽에 더 가까운 약자의 입장이라 칼끝을 거닐듯 매순간 긴장감이 깔려있습니다. 다만 그 방식은 직접적이거나 과장됨 없이 심플하고 우회적이며 세련되었습니다.

 

 

서로의 의중을 숨긴 채, 그리고 주인공 자신의 진실을 숨긴 채 펼치는 다이얼로그는 우리나라 영화 [밀정][공작]의 장면에서 보았듯, 냉정하고 차갑게 보이는 겉모습 안으로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의 공유가 느껴지도록 치밀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인상 깊던 대사 중 하나는 초반부 컴버배치가 세일즈맨으로서 하는 말 중에, 공장은 기계가 필요하고 기계는 부품이 필요하다고 말을 하는데, 이 말이 새삼 미미하고 작은 존재일 수 있는 그가 세계라는 거대한 공장이 무너지는 걸 막는 데에 꼭 필요한 부품 역할을 할 것 같다는 말로 들려 흥미로우면서도 불안감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베네딕트 컴버배치의 연기는 실로 경이롭습니다. 초반부에는 사실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는 평범한 연기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전개되며 감정선이 요동칠될수록 감탄할 수밖에 없었네요.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일을 나름의 기준으로 대담하게 수행하면서도 끊임없이 신변위협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 그리고 가족에 대한 걱정과 죄책감 등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는 그의 연기는 완벽하게 관객의 대리체가 되어 긴장감을 스크린 밖으로 고스란히 전달합니다.


백미는 후반부의 연기인데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자세히 언급하진 못하겠지만 개인적으로는 그의 경력 최고의 연기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만큼 강렬했네요.

 

 

이처럼 유려하고 스마트한 작품이지만 아쉬운 점도 물론 있습니다. 첩보 스릴러라기에는 우리가 기대하는 장르적 재미가 크게 살아있지는 않습니다. 다만, 스릴러보다는 드라마를 기대하고 보신다면 오히려 더 만족스러운 작품일 것 같네요.

 

마지막으로, 스파이 일을 하려면 가장 먼저 술에 지지 않는 체력이 필수라는 걸 [밀정]에 이어 이번 작품에서도 확실히 배웠습니다. ^^

 

 

8.1 / 10